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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87

이런 시 - 이상 시 이런 시 - 이상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긋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던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 2022. 5. 12.
성탄제 - 김종길 시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2022. 2. 8.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듯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감상 인생이 좋은 상황만 있을 수는 없다. 살다보면 고난과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꽃나무들도 가지에 눈 맞으며 겨울을 보내고 비를 맞으며 고난을 겪고 나서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흔들리며 크지 않은 꽃은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난은 언제든 있을 수 있고, 그런 상황을 극복 할 수록 더욱 견고하고 찬란하게 생을 살아 갈 수 있지.. 2022. 2. 8.
봄봄봄 그리고 봄 - 김용택 시 봄봄봄 그리고 봄 - 김용택 꽃바람 들었답니다 꽃잎처럼 가벼워져서 걸어요 뒤꿈치를 살짝 들고 꽃잎이 밟힐까 새싹이 밟힐까 사뿐사뿐 걸어요 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 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 꽃잎이 되어 바람이 되어 나는 날아요. 당신께 날아요 나는 꽃바람 들었답니다 감상 봄은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어둡고 추웠던 겨울이 끝나고 다시 초록이 돋아나고 따듯한 바람이 불면, 가슴이 간질간질 하며 설레는 사람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물며 이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설레임은 가슴이 터질듯 하다. 봄바람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걷는다면 세상에 더 바랄것이 없을 것이다. 봄바람 꽃바람이 들었다 해도 상관없다. 세상에 가장 활기차고 아름다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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