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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 - 진은영 시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은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잠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텐데
오월의 사과나무꽃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몸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너는 좋을 텐데
그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빈집이 된 가슴을
혀 위로 검은 촛농이 떨어지는 밤을
밤의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시들을
네가 쓰지 않아도 좋을 텐데
감상
네가 나의 애인이면 너는 정말 좋을텐데. 나는 시인이 될덴데. 너가 나의 애인이 된다면, 나는 너에게 시를 써줄 텐데.
너를 위해 꿈결같은,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듯한 시를 써줄 텐데. 너가 나의 애인이 된다면, 그녀를 짝사랑 하며 커지기만 한 공허한 마음을 비우고, 밤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는 시를 너는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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