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현대시97 새와 나무 - 류시화 시 새와 나무 - 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감상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흔들린다. 새가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흔들리는 것은 너가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 평온함 속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다가오면 나는 정말 많이 흔들리는 편이다. 사람의 좋은면을 보려고 노력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금사빠다. 금방 사람이 좋.. 2022. 7. 3. 그리운 이름 - 배홍배 시 그리운 이름 - 배홍배 흔들리는 야간 버스 안에서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저장된 이름 하나를 지운다 내 사소한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더듬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나를 일격에 넘어뜨리는 가로등, 일어나지마라 쓰러진 몸뚱이에서 어둠이 흘러나와 너의 아픔마저 익사 할 때 그리하여 도시의 휘황한 불빛 안이 너의 무덤속일 때 싸늘한 묘비로 일어서라 그러나 잊지 마라 묘비명으로 새길 그리운 이름은 감상 1년을 만났건 10년을 만났건 연인이 헤어지는 순간 그들이 함께한 모든 시간이 의미없어 진다. 그 사람과 함께할 미래는 없는 것이다. 시인의 사랑은 야간버스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우며 끝난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람과의 관계가 끝난것이다. 슬픔에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리다 넘어져버렸다. 시인이.. 2022. 5. 26. 이런 시 - 이상 시 이런 시 - 이상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긋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던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 2022. 5. 12. 성탄제 - 김종길 시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2022. 2. 8. 이전 1 ··· 3 4 5 6 7 8 9 ··· 2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