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 - 이상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긋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던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감상
지나간 사랑은 잊기가 쉽지 않다. 헤어진 이유가 어찌 됫던 한평생 좋아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앓는 사람이 있다. 이 시에서 이상 시인이 그런 사람인것 같다. 토목 인부들이 뽑은 돌을 보면서 좋아했던 사람을 생각한다. 마음속에 깊히 박혀있던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 돌이 뽑힌 그 자리의 모양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사라진 돌을 찾아보다 작문을한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평생 잊지 못할 그사람을 보내고 우리의 인연은 끝내 이어지지 못할걸 알지만, 부디 내가 사랑했던 그 미소를 잃지 말고 내내 아름다워 달라 혼자 전하지 못할 말을 적어본다.
하지만, 역시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다면, 아무런 이런 시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이 버거워 이런 시 따위 찢어버리고 현실을 부정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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