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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시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사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 2021. 10. 23.
스며드는 것 - 안도현 시 (간장게장) 스며드는 것 - 안도현 시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감상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먹는 음식들은 생각해보면 다른 생물의 죽음을 수반한다. 시인은 이런 것 하나하나가 시로 다가오나 보다. 게가 간장속에 잠겨 꾸역꾸역 간장을 들이마시며 움직임을 멈추는 모습을 보며, 알을 품고 있는 암게의 입장에서 알들에게 마지막으로 읊조리는 위안의 말들을 상상했을까. 시인은 세상의 모든 아.. 2021. 10. 22.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부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시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감상 나는 누군가에게 내 자신을 불태울만큼 뜨거운 사람이었던적이 있던가. 어쩌면 나는 이타적인 면에서 길바닥에 뒹구는 연탄재보다 못한 존재가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내 한몸 태워 따듯함을 전해주는 연탄. 연탄의 쓰임은 아름답다. 시인은 일상적인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굴러다니는 다 타버린 연탄재를 차는 사람들을 보며 안도현 시인은 연탄의 뜨거운 희생을 생각했던것 같다. 2021. 10. 21.
반딧불 - 윤동주 시 반딧불 -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쪼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감상 윤동주 시인이 동시도 썼는지 몰랐다. 윤동주 시인의 순수함이 잘 나타난 시같다. 그믐밤 초승달이 뜨는 이유는 달조각이 떨어져 숲에 반딧불이 되어서라고 한다. 그 숲에 달조각 반딧불이를 주으러 가자는 윤동주 시인. 올해 여름 나도 천안에서 생에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보았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들은 정말 달조각처럼 신비하게 빛났었다. 훗날 만날 나의 아이들과 함께 반딧불을 보러 간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달조각이 반딧불이가 되었다고 말해줘야지.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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