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13 여승 - 백석 시 여승 -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전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감상 요즘 살기 힘들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힘들었다. 일하러 간 남편은 십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가난한 살림에 딸아이는 칭얼댄다. 줄 수 있는게 없어 가슴 아파 그만하라고 아무죄 없는 딸아이를 때리며 울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약해.. 2021. 10. 13. 은수저 - 김광균 시 은수저 - 김광균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 마저 아른거린다. 감상 항상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건 어렵지만, 아기를 떠나 보내는 부모의 마음만큼 찢어지는 아픔이 있겠나. 말도 잘 못하는 여린것이 떠났다. 밥을 먹는데 은수저 짤그랑 거리며 밥풀을 튀기던 아기가 없다. 아이가 쓰던 은수저는 보기만 해도 가슴아파 눈물이 고인다. 바람이 불어 밖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혹시 우리 아기가 아직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건가. 옥구슬 굴러가는듯한 웃음소리도 들리는것 같다. .. 2021. 10. 13. 방문객 - 정현종 시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감상 요즘은 사람을 믿기 어렵다. 그런 세상이 되었다. 사람을 믿는 것도 힘들고 그만큼 사람과 사람 관계도 가벼워졌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은 요즘 같이 인간관계가 가벼운 세상에 인간관계에 관한 묵직한 진리를 하나 던져준다. 나에게 내가 중요한만큼, 다른 사람도 그의 인생에서 자신이 중요하다. 내가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소중한 사람이고, 그들에게도 나못지 않은 슬픔과 아픔, .. 2021. 10. 12. 님의 침묵 - 한용운 시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 2021. 10. 11.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