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감상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일본 유학시절의 감정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육첩방에 홀로 앉아 있는데 창밖에 비는 내리고 윤동주 시인은 생각했을것이다. 어린시절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은 하나 둘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가 죽어가는데 나는 무얼 위해 한가로이 대학노트를 끼고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학비 봉투를 받아 여기 일본에서 공부를하고 있는것인가. 원수같은 타국에서 방에 앉아 스러져간 친구들을 생각하며 홀로 자신의 감정과 싸웠을것이다. 세상은 일제강점하에 살기 어려운데 나는 이렇게 쉽게 시나 쓰는 상황이 부끄러웠을것이다. 그래도 시를 써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지 다짐을 했을것이다. 등불을 밝히고 광복을 위해 시를 써내리는 시인. 자신도 친구들 처럼 물리적인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을 끌어안고 용서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시를 쓰기로 다짐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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