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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곱추 - 김기택 시

by 담수쓰다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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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인

 

곱추 - 김기택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슴 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가슴 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감상

 

지하도 바닥에 웅크려 있는 노숙자를 보았다. 둥글게 굽은 등뼈 아래 얼굴을 숨기고 빈 손바닥만 보이는 노인. 어느날 노인이 몸을 태아처럼 웅크려 자고 있었다. 시인은 노인이 알속에 들어가 껍질을 깨고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나올 것 같다 한다. 하지만 노인은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아마 시인은 길바닥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작품 안에서라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알을 깨고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태하도록 그것도 아니면, 사후에 이승에 대한 괴로움을 떨치고 다시 강력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무언가로 힘차게 살아갔으면 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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