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시

가재미 - 문태준 시

by 담수쓰다 2021. 10. 31.
반응형

문태준 시인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물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희망이 필요하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감상

가재미는 원래 태어 날 때는 눈이 양쪽으로 대칭이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생활하며 자라 점점 눈이 한쪽으로 쏠린다. 

병원에 가녀린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가 있다. 그녀도 오랜 시간동안 병원에 누워 있다보니 가재미 같아져버렸다. 나는 그녀를 볼 때 그녀와 함께했던 정겨운 날들을 떠올리지만, 그녀는 가재미 처럼 시야가 쏠려 죽음만 바라보고 있다. 나도 그녀 옆에 가재미처럼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사람은 가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거기에 압도당해버리거나 그 일에만 신경을 쓸 때 다른 시야로 세상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시인은 삶을 포기한채 죽음만 보고 있는 그녀가 가재미 같아 보였을까. 두 눈이 죽음으로만 쏠려있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을것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삶을 바라보면 좋을텐데.. 하지만, 시인은 그런 그녀를 보며 그녀와 똑같이 가재미 같이 누워 함께 죽음을 기다린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