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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운동회 날 - 오성호 시

by 담수쓰다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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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날 - 오성호

삶이란 게
가을 운동회 날처럼
늘 마음 설레게 하는 것이었으면
끝날 무렵이면 누구나
공책 한 권쯤은 챙길 수 있고
누구나 가족들 앞에
햇살처럼 뻐기고 설 수 있는 그런 날
어쩌다 넘어져서 꼴찌를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위로 받을 수 있고
공정한 출발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해도 좋은 달리기 시합처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 또한 그럴 수 있다면
진 편도 이긴 편도 모두 떳떳하게
푸른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그런 날들이라면

세상 모르는 아이들
박수소리 웃음소리 와글거리는 소리
새떼처럼 날아오르는 운동장 가에서
나는 오래 전 지워져 버린 내 소년의
슬픈 뒷모습을 찾아냈다
낡은 교실 모퉁이를 돌아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목이 꺾이고, 무릎이 꺾이고
끝내 이슬처럼 잦아진
내 소년이 흔드는 작은 손을
오래 오래 지켜보았다

가을 운동회

감상

어린시절 운동회 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신나는 날이었는지 모른다. 뜨거운 햇볕을 맞아가며 운동장에서 연습했던 춤들,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콩주머니를 박에 힘껏 던지던 어린 날엔 운동회 날은 신나는 것들 투성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어린날의 운동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리기도 출발선에서 공정하게 하고 넘어져 꼴찌를 해도 위로를 받으며 끝날 때에는 모두 공책이며 지우개며 손에 가득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릴적 운동회가 설레어서 잠을 설치던 어린 녀석은 교문을 나서고 목이 꺾이고, 무릎이 꺾여 이슬처럼 사라졌다. 세상은 운동회처럼 정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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