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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시

by 담수쓰다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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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작가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게 없었다.

 

나는 따듯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눈사람 자살 사건

 

감상

 

눈사람도, 인간도 원한적 없이 태어나 추운 고통속에 살아간다. 인간의 자살은 어떤 방식이던 눈쌀을 찌푸리게 되지만, 눈사람의 자살은 추운 생을 마치고 원하는대로 따듯하게 흔적없이 녹아 사라진다. 이상적인 소멸. 자살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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