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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감상
마음이 복잡해 논가를 따라 걸어볼까 합니다. 걷다보니 우물이 있습니다. 괜히 궁금해 우물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빼앗긴 땅에도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파랗고 가을이 왔습니다. 그리고 내 모습도 비칩니다. 나는 왜 여기서 우물 속이나 들여다 보고 있을까요. 이런 내가 미워 다시 길을 나섭니다. 그러다 다시 들여다 봅니다. 나는 끝내 나 자신을 온전히 미워 할 수 없습니다. 못난 자신을 우물속에 비춰두고 나는 다시 길을갑니다. 그 우물가에는 부끄럽고 죄스런 사나이가 추억처럼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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